1. 사전동의권이란
회사가 새로운 투자를 받으려 한다. 창업자와 새 투자자는 조건에 합의했는데, 기존 투자자가 반대한다. 지분도 많지 않은 기존 투자자가 왜 이번 투자에 관여하는 걸까.
투자계약에 ‘사전동의권’이 들어 있다면 이런 상황이 생길 수 있다. 회사가 신주를 발행하거나 자본금을 변경하는 등 계약에서 정한 일을 하려면, 먼저 해당 투자자의 동의를 받도록 하는 약정이다. 미리 알려주기만 하면 되는 사전통지와는 다르다.
투자자는 돈을 넣어도 경영을 직접 결정하기 어렵다. 특히 지분이 적으면 주주로서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에도 한계가 있다. 그래서 투자할 때부터 중요한 결정에 관여할 수 있도록 계약으로 정해두려는 것이다.
2. 특정 투자자에게만 권리를 줘도 될까
회사에는 그 투자자 말고도 다른 주주들이 있다. 한 사람에게만 동의권을 주면 다른 주주와의 형평성은 어떻게 될까.
실제로 이 문제가 대법원까지 간 사건이 있다. 한 투자자가 회사에 20억 원을 투자해 약 5.27%의 지분을 취득하면서 주요 경영사항에 관한 사전통지·동의권을 받았다. 약정을 어기면 주식의 조기상환과 위약벌 등을 청구할 수 있도록 했다.
이후 회사가 사전통지·동의 약정을 지키지 않고 두 차례 유상증자를 진행하자 투자자가 소송을 냈다. 유상증자는 회사가 새 주식을 발행하고 그 대가로 자금을 받는 일이다.
항소심은 사전동의권 약정이 무효라고 봤다. 근거는 ‘주주평등원칙’이었다. 회사는 주주를 보유한 주식 수에 따라 평등하게 대우해야 하는데, 특정 투자자에게만 다른 주주에게 없는 권리를 주었다는 것이다.
3. 대법원이 살펴본 것
대법원은 특별한 권리를 부여한 이유와 그 영향을 더 살펴야 한다고 판단했다. 특정 투자자의 동의권이 회사와 다른 주주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판단에 필요한 사정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포함된다.
- 투자의 필요성: 회사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동의권을 부여할 필요가 있었는가.
- 다른 주주에게 미치는 영향: 다른 주주가 손해를 보거나 의결권을 침해받는가.
- 경영 감시의 효과: 투자자의 감시가 회사와 다른 주주의 이익에도 기여하는가.
대법원은 이런 사정을 충분히 따지지 않고 약정을 무효라고 판단한 항소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하도록 돌려보냈다.
따라서 이 판결을 ‘사전동의권은 유효하다’는 뜻으로 읽으면 범위가 너무 넓어진다. 일부 주주에게 특별한 권리를 주더라도, 이를 정당화할 사정이 있다면 허용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대법원 2023. 7. 13. 선고 2021다293213 판결
4. 동의권과 투자금 보장의 경계
동의권을 인정할 수 있다면, 회사가 이를 어겼을 때 돈을 지급하기로 한 약정도 인정될까.
대법원은 유효한 동의권 약정을 지키도록 하고, 위반으로 생긴 손해를 배상하기 위한 약정은 원칙적으로 인정될 수 있다고 봤다. 다만 예정된 배상액이 부당하게 크면 법원이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손해배상이라는 이름으로 투자금 회수를 절대적으로 보장하는 수단이 되지 않도록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판결의 손해배상 약정에 관한 판단
사전동의권은 투자자가 경영진을 감시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동의가 필요한 범위가 넓고 위반에 따른 부담이 클수록 회사의 의사결정에도 영향을 준다. 이 판결이 요구하는 검토는 그 권한이 필요한 이유와 회사가 부담할 비용을 함께 보는 일이다. 투자자 보호라는 목적이 있어도, 회사와 다른 주주에게 미치는 영향까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