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법 · 벤처투자

함께 팔자고 했는데, 상대가 협조하지 않는다면

동반매도요구권과 협조의무

1. 투자자는 어떻게 투자금을 회수할까

비상장회사에 투자한 투자자는 언젠가 주식을 팔아 투자금을 회수해야 한다. 가장 기대하는 방법은 회사가 상장한 뒤 주식을 시장에서 파는 것이다. 상장이 늦어지면 주식을 사 줄 사람을 직접 찾아야 한다. 그런데 회사를 실제로 움직이는 대주주가 따로 있는 상황에서 소수 지분만 사려는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투자계약에 ‘동반매도요구권(drag-along)’을 넣기도 한다. 투자자가 자기 주식을 팔 때 대주주의 주식까지 같은 조건으로 함께 팔도록 요구할 수 있는 권리다. 소수 지분이 아니라 경영권이 붙은 회사 전체를 매물로 내놓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대법원도 이 점을 짚었다. 동반매도요구권을 행사하면 대주주 지분까지 함께 팔리므로, 투자자는 경영권 프리미엄을 포함한 높은 가격으로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 회사의 경영권이 넘어가는 기업인수의 효과가 생길 수도 있다고 봤다.

2. 3,800억 원 투자와 동반매도요구권

2011년 두산인프라코어와 그 중국 지주회사는 중국 자회사 DICC의 지분 20%를 사모투자전문회사 세 곳에 3,800억 원에 팔았다. 동시에 주주간 계약을 맺어, 3년 안에 DICC가 기업공개를 하지 못하면 주주 한쪽이 자기 지분을 팔 수 있도록 했다. 이후 투자자 측의 계약상 지위는 투자목적회사가 넘겨받았다. 이 글에서는 둘을 구분하지 않고 ‘투자자’라고 부른다.

계약에서 정한 매도 절차는 이렇다. 파려는 쪽(매도주주)은 원칙적으로 입찰을 거쳐 가장 유리한 가격과 조건을 낸 매수예정자를 정한다. 그리고 정식 계약을 맺기 전에 상대방에게 가격과 조건을 적은 매도결정통지를 보내면서, 상대방 지분도 같은 조건으로 함께 팔라고 요구할 수 있다.

통지를 받은 상대방은 세 가지 중 하나를 고를 수 있었다.

동반매도요구를 받은 상대방의 선택지
선택내용
(x) 동의양쪽 지분 전부를 매수예정자에게 파는 계약이 체결된 것으로 본다.
(y) 직접 매수매도주주의 지분 전부를 상대방이 산다. 가격은 매도결정통지 가격과 미리 약정한 가격 중 상대방이 고른다.
(z) 다른 매수인 제안더 유리한 조건의 제3자에게 팔자고 제안한다. 매도주주 잘못 없이 기간 안에 계약이 안 되면 매수예정자에게 함께 파는 것으로 본다.

14일 안에 아무것도 고르지 않으면 (x)를 고른 것으로 본다.

3. 매각은 왜 멈췄을까

2014년 4월까지 상장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투자자는 매각을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준비에 필요한 자료를 요청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외부 유출이 금지된 자료라며 진정성 있는 매각절차가 구체화되는 시점에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투자자는 법원에 자료 열람을 구하는 가처분을 신청했고, 법원은 그중 중장기사업계획서 부분만 받아들였다.

2015년 5월 투자자는 DICC 지분 100%를 매각 대상으로 공고했다. 인수 후보 두 곳에서 법적 구속력이 없는 인수의향서를 받았고, 이들이 보낸 115개 질문에 대한 답변과 자료를 두산인프라코어에 요청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지금 단계에서는 답하기 어렵다고 했다. 대신 인수 후보를 직접 만나 진정성을 확인하고 싶다고 제안했다. 투자자가 이 제안에 응하지 않으면서 매각 절차는 거기서 멈췄다.

투자자는 소송을 냈다. 민법 제150조 제1항은 조건이 성취되면 불이익을 받을 당사자가 신의성실에 반해 조건의 성취를 방해한 경우, 상대방이 조건이 성취된 것으로 주장할 수 있다고 정한다. 민법 제150조 투자자는 두산인프라코어가 매수예정자 결정이라는 조건의 성취를 이렇게 방해했으니, 조건이 성취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1심은 청구를 기각했지만 항소심은 받아들였다. 세 선택지 중 이행할 수 있는 것은 (y)뿐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두산인프라코어가 투자자의 지분을 사는 계약이 체결된 것으로 보고, 매매대금을 지급하라고 했다.

4. 협조할 의무는 있었다

대법원은 먼저 두산인프라코어에게 매각에 협조할 의무가 있었다고 봤다. 동반매도요구권을 행사하면 매각 대상은 DICC 지분 100%가 된다. 경영권을 가진 대주주가 협조해야 적합한 매수 후보를 찾고, 기업가치를 평가하고, 투자소개서를 만들 수 있다. 그래서 두산인프라코어는 매각 단계에 맞춰 적기에 자료를 제공하고 실사 기회를 주는 등 협조할 신의칙상 의무가 있다고 했다.

의무는 한쪽에만 있지 않았다. 매각을 진행하는 투자자도 상대방이 요청하면 필요한 정보를 적절한 시기에 제공해야 한다고 했다. 매수 후보가 진정으로 살 의향이 있는지, 인수 목적이나 의도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는 데 필요한 정보다.

결론적으로 두산인프라코어의 협조의무 위반은 인정됐다. 다만 대법원은 투자자의 모든 자료 요청이 정당했다고 본 항소심의 설시는 부적절하다고 덧붙였다.

5. 그래도 계약이 체결된 것으로 볼 수는 없었다

협조의무를 어겼다는 것과, 그래서 주식매매계약이 체결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대법원은 세 가지 이유로 항소심 판단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누구에게 얼마에 파는지 정할 수 없었다. 동반매도요구권을 행사하려면 먼저 매수예정자와 가격이 정해져 있어야 한다. 그런데 계약에는 상대방이 협조하지 않아 입찰이 진행되지 않을 때 어떻게 되는지에 관한 내용이 없었다. 조건이 성취된 것으로 의제하더라도 매수인과 매각금액까지 의제할 수는 없었다. 대법원은 매매계약이 성립하려면 적어도 매도인과 매수인이 누구인지는 구체적으로 특정되어야 한다고 했다.

직접 사는 것은 선택일 뿐 의무가 아니었다. 계약의 기본 원칙은 (x), 함께 파는 것이다. (y)와 (z)는 상대방이 원할 때 고를 수 있는 추가 권리였다. 따라서 항소심처럼 세 선택지를 대등하게 놓고 남은 것이 (y)뿐이라고 처리할 수는 없었다. 두산인프라코어가 경영권을 지키려면 반드시 직접 사야만 하는 사정도 드러나지 않았다.

자료를 주지 않은 것만으로는 방해라고 보기 어려웠다. 이런 경우에 민법 제150조를 유추적용하려면 단순한 협력 거부로는 부족하다. 방해행위에 준할 정도로 신의성실에 반해 협력을 거부해야 한다. 이 사건 매각은 구속력 없는 인수의향서만 받은 채 투자소개서를 준비하던 초기 단계에서 멈췄다. 기업인수는 본계약까지 여러 단계를 거치고 변수도 많다. 그래서 자료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조건 성취를 방해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봤다.

대법원은 항소심 판결 중 이 부분을 파기하고 다시 심리하도록 돌려보냈다. 대법원 2021. 1. 14. 선고 2018다223054 판결

이 판결이 동반매도요구권을 무의미하다고 본 것은 아니다. 상대방의 협조의무는 분명히 인정됐다. 다만 그 의무를 어겼다는 이유로, 계약에 정하지 않은 결과까지 끌어낼 수는 없다고 봤다. 대주주가 투자자의 지분을 사야 한다는 결과가 그렇다. 대법원이 지적했듯 이 계약에는 협조가 없어 입찰이 멈췄을 때 어떻게 되는지가 비어 있었다. 권리를 적어 두는 것과, 그 권리가 막혔을 때의 결과를 정해 두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근거

  1. 민법 제150조
  2. 대법원 2021. 1. 14. 선고 2018다223054 판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