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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법 · 벤처투자

투자자가 보낸 이사는 누구 편일까

지명이사의 충실의무와 이해상충

1. 투자자는 왜 이사를 지명할까

스타트업에 투자한 벤처캐피털이 투자계약에 이사 한 명을 지명할 권리를 넣었다고 해보자. 이후 그 벤처캐피털의 임원이 스타트업의 이사로 선임된다. 이런 사람을 ‘지명이사’라고 부른다.

투자자는 이사를 통해 회사의 사정을 파악하고 중요한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다. 회사도 투자자의 경험과 전문성을 경영에 활용할 수 있다.

다만 투자자가 지명했다고 곧바로 이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상법상 이사는 주주총회에서 선임한다. 계약으로 후보자를 정할 권리를 확보하는 것과 실제로 이사에 취임하는 것은 구별된다. 상법 제382조

2. 지명한 사람과 책임을 지는 대상

투자자가 보낸 사람이니 이사회에서도 투자자의 뜻을 따르면 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사로 선임되면 그 회사의 이사로서 의무를 부담한다.

현행 상법은 이사가 회사와 주주를 위해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고 정한다.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고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규정도 있다. 2025년 개정으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가 명시적으로 추가됐다. 상법 제382조의3

따라서 투자자의 의견을 이사회에 전달하고 그 입장을 설명할 수는 있어도, 자신을 지명한 투자자의 이익만을 판단 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다. 투자회사 직원으로서 받은 요청과 투자받은 회사의 이사로서 내려야 할 판단이 서로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3. 회사와 투자자의 생각이 다를 때

가령 회사의 운영자금이 부족해 후속 투자가 필요한 상황을 생각해보자. 새 주식을 발행하면 자금은 들어오지만, 추가로 투자하지 않는 기존 투자자의 지분율은 낮아진다. 기존 투자자는 이를 이유로 후속 투자에 반대할 수 있다.

이때 지명이사가 검토할 문제는 기존 투자자의 지분율만이 아니다.

  • 자금 사정: 투자를 받지 않아도 회사가 사업을 계속할 수 있는가.
  • 투자 조건: 새 투자자가 제시한 가격과 조건이 회사에 적절한가.
  • 다른 선택지: 기존 주주에게 미치는 부담을 줄이면서 자금을 마련할 방법이 있는가.

이 사례에 언제나 찬성이나 반대라는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낮은 가격의 투자가 기존 주주에게 부당한 손해를 줄 수도 있고, 당장의 투자를 거절해 회사가 더 큰 어려움에 빠질 수도 있다.

지명이사의 역할은 이런 사정을 검토해 판단하는 데 있다. 자신을 지명한 투자자가 찬성하거나 반대한다는 사실만으로 검토를 끝낼 수는 없다.

4. 이사회 자료를 투자자에게 보내도 될까

투자자가 지명이사에게 이사회 자료를 보내 달라고 요청하는 경우도 생각해볼 수 있다. 투자 현황을 관리하려면 회사의 정보를 알아야 하므로 자연스러운 요청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사회 자료에는 회사의 기술, 거래 조건, 아직 공개하지 않은 사업계획 등이 들어 있을 수 있다. 상법은 이사가 직무상 알게 된 회사의 영업상 비밀을 누설하지 못하도록 한다. 이 의무는 퇴임 후에도 계속된다. 상법 제382조의4

투자계약에 회사가 일정한 정보를 제공하도록 하는 조항이 있더라도, 그 범위와 이사가 접하는 자료의 범위가 반드시 같지는 않다. 자료 공유가 허용되는지는 정보의 성격과 계약 내용, 공유 권한 등을 따로 검토할 문제다. 자신을 지명한 투자자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자료를 전달할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지명이사는 투자자의 관점을 이사회에 가져올 수 있다. 그 관점은 회사의 경영을 감시하고 더 나은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동시에 이사에게는 회사와 전체 주주를 고려할 의무가 있다. 투자자의 요구를 이해하면서도, 그 요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를 회사의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 자리다.